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주터널 열차 충돌사고 (문단 편집) == 사고 이후 == * 열차와 지휘소간 통신수단이 전무하여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도 컸다. 이 사고를 계기로 모든 기관차는 '''[[무전기]]'''를 구비하도록 했다. * 이 사고로 희생된 13인(검표원 제외)의 유해도 15일에 희생된 학생들이 잠든 곳에 묻혔다. * 겨우 참사를 잊을 만하던 [[남원역 열차 추돌사고|1년 뒤 남원역에서 열차가 충돌해]] 초등생 17명과 고교생 3명이 사망했다. * 이 때 사고를 겪은 인창고 18회 졸업생 80여명은 [[경주시]]에서 성황리에 진행된 '추억의 수학여행' 이벤트를 알게 된 동창회장의 제안으로 '''참사 40년 후'''인 2010년 10월 16일부터 1박 2일간 당시의 은사님도 초청하여 '''[[경주시]]로 수학여행 한풀이'''를 하며 '''사고로 희생된 스승과 급우들을 추모'''했다고 한다. 수학여행 참가자들은 이 날 [[서울역]]에서 옛 교복을 입고 인창고 15회 졸업생인 [[이귀남]] 법무부 장관과 최용주 인창고 교장 및 학생들의 환송을 받으며 수학여행 열차에 올랐다. 추억의 행사를 주관하는 신라문화원은 이들의 특수한 사연 때문에 교복을 미리 서울로 보내 참가자들이 열차에 탑승할 때부터 입을 수 있게끔 특별히 준비했으며 사고로 숨진 스승과 친구들을 추모하는 영상 제작과 관련 프로그램도 지원했다고 한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20&aid=0002174833|기사1]][[http://www.kyongbuk.co.kr/main/news/news_content.php?id=510655&news_area=010&news_divide=&news_local=11&effect=4|기사2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